너를 위한 선물

오늘의 향기 - “행복하십시오!”

작성자
명기 이
작성일
2020-09-09 08:57
조회
82

이미지 : pixabay.com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즐겨부르는 성가, “가난한 자입니다.” 가운데 한 소절을 부릅니다.
“어제는 가고 새로운 하루 더 오래 기다릴 수 없사오니 나를 받아 주소서.”
주님께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어둔 밤을 뒤로 하고 새 아침의 빛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에게 축복하며 시작합니다.

오늘 미사에서 듣는 독서와 복음말씀이 나란히 제 마음을 청량하게 해줍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서는 다음의 말씀이 마음에 남습니다.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30-31).

불현듯 이런 성찰이 일어납니다.
“나는 아프다, 슬프다, 고달프다.” 하는 울부짖음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법으로 울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대보다 더 열심히 산다. 나는 그대보다 더 올바르다. 나는 그대보다 더 ... 더 ...”

이와 같은 목소리는 또 다른 울음이요, 비명임을 감지하게 됩니다.
이럴 때, “아, 주님께서 나를 이웃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초대를 하시는구나!” 하고
주님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서 역설을 명상합니다.
그 역설은 바로 주님께서 선포하시는 행복선언의 말씀입니다.
즉 “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1).
여기서 우는 사람들은 앙심을 품거나 타인을 해롭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습니다.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주님께서 해결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일을 지켜주십시오!”
하며 울부짖습니다.

그들은 복수를 비롯한 폭력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비폭력적인 가난한 사람들이기에 그러합니다 .
무엇보다 하느님의 정의는 완전하며 한번도 실패하는 일이 없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의 행복선언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오로의 역설을 이해합니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가고” 있으므로, 변하지 않는 주님의 섭리 안에서
울지 않는 사람처럼, 비폭력적으로 고통을 견뎌내도록 용기를 줍니다.
다른 한편, 거짓 기쁨을 보이는 태도를 도전합니다.
속에 그토록 비참함을 숨기고 승리한 척 애써 기쁨을 자아내는 어리석음을
고발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나는 아파요, 슬퍼요, 불편합니다!” 하고 공동체 안에서
말할 용기가 필요하군요.
솔직한 감정의 표현은 공동체 모두를 평정시켜줍니다.
아, 저 분도 그런 아픔이 있구나 하는 이해를 일으키지요.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기”(루카 6,26)를 기대하는 것으로부터
떨치고 나와, 어떻게 하면 주님께서 “보시니 참 좋다.” 하신
창조 때의 그 선함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찾아낼 수 있을지
오늘 하루 이 방향으로 명상하며 지낼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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