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선물

새로운 시작

작성자
이 지현
작성일
2018-02-27 11:54
조회
280
빙하기가 다시 돌아오는가 싶을 정도의 추운 날씨를 지나, 부쩍 누그러진 날씨에 사계절을 주신 하느님을 다시 한번 느껴 봅니다.
학교에서 일을 하다 보면 봄을 더욱 분주히 맞이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함께 설레기도, 긴장하기도 하죠.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선생님, 새로 배우는 과목과 활동들에 여러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금세 익숙해져서 장난도 치고 즐겁게 참여하는 학생들을 보면 두려움이나 긴장이라는 부정적 감정은 의외로 순간의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새로운 시작은 그런 것일 겁니다.
호기심 가득 설레는 마음으로 대하거나 두려움과 긴장으로 대하는 것.
어떤 마음으로 시작할 것인지는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2년 전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라는 주제를 받고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수도자‘ 라는 단어가 저에게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수녀회에 입회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제게 ’수도자‘ 라는 단어는 문득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니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라는 말이 긴장되었습니다. ‘수도자로서 바라본다.‘ 라는 의미와 바라봐야 하는 대상이 세상과 교회라는 큰 대상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할까요?
하지만 그동안 주어진 시간에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저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면서 알아듣게 된 것은 딱 하나입니다.
수도자는 남들과 달라서 무언가 다르게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 안에서 더욱 예민하게 하느님을 찾고자 한다면 그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든 멈춰 서서 “하느님이라면 어떻게 보실까?”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는 제가 ‘수도자’라는 정체성에 무거움을 싣고 힘들게 묶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안의 장애물을 찾았다고 할까요?


새로운 시작. (이미지 출처 = Pixabay)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내적으로 서서히 변화시킨다.
우리는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그 활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치울 수 있게 된다.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과 하나되어 닮게 하며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 그리고 모든 사건 안에 계시는 성령의 현존에 민감하게 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예수님 마음으로 현실을 관상하고 느끼게 되며, 하느님나라 봉사에 헌신하게 되고, 애덕에 있어 성장하게 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필립비서 2,5)
- 성심수녀회 회헌 #21

최근 가까운 친구와의 대화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함께 다니며 질풍노도의 시절을 함께 겪고, 저의 투병 시절과 수녀원 입회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쉽게 말해 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관계라, 함께 있을 때는 마치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는 친구입니다.

“가끔 네 글을 읽으면 적응이 안 되기도 해. 글로 보면 넌 ‘사랑 넘치는 수녀님’ 같거든.”

“내 글을 읽어? 나도 종종 글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기도 해. 글을 거짓으로 쓰진 않지만 매일 매 순간을 글의 내용처럼 살진 못하니까. 종종 그 괴리감이 너무 힘들어.”

“그 괴리감을 의식하고 좁혀 나가는 게 ‘수도’ 아니겠냐. 그런 걸 하는 사람이니까 ‘수도자’일 테고. 괴로워하지 말고 네가 글 써 온 그대로만 살도록 노력해. 넌 ‘수도자’니까!”

두려움과 긴장으로 시작했던 2년여 간의 글쓰기는 제게 큰 선물로 남았습니다.
이제 제가 선포한 대로 삶을 살아야 할 축복의 시간이 남은 것이죠.
역시 부정적 감정은 찰나의 두려움일 뿐입니다. 결국은 아름다운 시작을 열어 주었으니까요.

봄이 옵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많은 분들.
혹여 긴장과 두려움이 밀려오더라도 그것과 함께 오는 설렘과 호기심을 놓치지 마시고
매일의 삶에서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을 의식하며
주어지는 의미를 알아들으시며 행복하게 지내시길
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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